독도와 일본선교

만일 이 기사를 읽는 한국 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무시하셔도 됩니다. 아니면, 일본 친구나 동료가 있을 때는 더움이 될지도 모르는데 기본적으로는 믿는 사람 대상으로 쓸 글입니다. 내영이 아주 도전적인 것 같을 것인데 하나님의 권속안에 일어난 과재 하나이기 때문에 용기를 내서 기록하겠습니다.

저는 선교사이고 이제 동경에서 교회를 개척하는 목사입니다.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고 일본선교로 먼저 파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언어를 공부하다가 다른 나라에서 5년동안 이상 봉사 활동을 했습니다. 한국사람 그리고 조선족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동양에 대해 하나님께서 큰 계획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하나입니다.

뉴스에 나온 독도 그리고 중국과 있는 영토문제 때문에 요즘 일본 성도들이 큰 무서움이 마음속에 들었습니다. 뉴스에서는 일본정부가 강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면 일반 사람들도 그렇다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사실 대부분 관심이 없고 역사적인 지식도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에서 나온 반일행동들을 영상으로 보니까 일본 사람들도 일반 사람들이 그렇다고 오해합니다. 평소에 서로 교재나 사귐이 있는 사람이야 그런 일이 있어도 특별하게 여기지 않은데, 한류 유행에 익숙해진 일본사람들은 평소에는 상냥한 한국 사람들이 어째서 갑자기 표변된냐고 당황합니다.

믿는 사람들이 특히 일본사람앞에 독도가 우리땅이라고 하면 안된다고 하겠습니다. 이유가 몇게 있습니다.

1. 일본 선교에게 큰 방해가 됨

먼저 성경 말씀을 나눠 드리겠습니다.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롬14장15-19절)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고전9장19-22절)

영적으로 말하면 독도가 우리땅이란 주장이 아무리 옳다 해도 그 주장 때문에 선교의 대상인 일본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한국인라면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아무리 한국이 일본에 종이었다, 일본이 사과 해야 한다 해도 기독교인들의 인구가 1%이하인 일본이 20-30%있는 한국에게는 역시 선교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일본을 사랑하신다 믿는다면 복음 전파를 위해 자기 것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이 여기 계시는 장기 선교사님들이 위에 있는 것들을 제가 안 말해도 늘 이해하시고 실행하십니다. 요즘 쓰나미 피해지에 한국 단기선교 팀이 가셨는데 역사적인 문제나 방사능 문제를 넘어가서 영혼 구원을 위해 예순님의 명령을 순존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너무 아름다웠습니다!

2. 신학적인 문제

영토는 하나님께서 각 나라에 주시는 선물입니다. 국가의 경계선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사17장26절) 그래서 그 나라의 지도자와 국민들이 영토를 지켜야 할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적인 은사입니다. 자연적인 은사는 다시 말하면 안 믿는 사람들에게도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로 구원을 받아들인자들에게 사실 영토가 예비됩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5-5)

온유한 사람이 예수님의 복음을 영접하고 자기 죄를 께달았고 마음이 겸손해진 사람의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라들를 기업으로 나눠 주시는 약속이 성경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국적이 천국으로 바뀝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권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이 천국에서 다시 이 땅에 오시면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 된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땅을 다스립니다. 그 때는 일본, 한국, 상관 없이 성도들의 땅이 될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도 이 세상에서 국적을 한국이나 일본이나 갖고 있기 때문에 영토에 대한 관심도 저절로 생깁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이 기대가 헐씬 더 크기 때문에 비교하면 두 나라사이에 있는 영토문제가 아주 작다고 생각합니다. 그 것보다 예수님이 다시 왕들의 왕으로 오시고 나라들에게 심판을 주실 때 믿지 않는 한국사람이 독도커녕 한반도도 상속하지 못해 지억에 들어가야 하는 진리를 잘 기억해야 합니다(마25장31-46절). 가장 한국을 사랑하는 수단이 한국 사람한테 예수님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3. 영적인 문제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3장28절)

하나라고 하는 것이 민족의 차이가 없어지는 말이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차이가 그리수도인이 되도 계숙 있는 거처럼, 저는 일본사람이고 여러분은 한국사람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그 편지에서 유대주의자를 대하고 그리수도인의 정체성을 분명히 가리켰습니다. 유대인이 이방인들에게 할례나 유대인만이 하는 의식을 지켜야 복을 얻겠다고 하니까 그 것이 저주를 받을 이질한 복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바울이 다른 편지에서 그런 자랑수러운 유대성이 해라고 불렀습니다. (빌3장7절) 왜냐면 유대인이 갖고 있는 율법이 이방인을 방해하는 벽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독도 문제를 하도 말하고 인본인 형제 자매들과 있는 교재를 일어 버리면 똑같은 문제가 생깁니다. 여러분은 한국 그리수도인(Korean Christian)이 되고 싶어요? 아니면 기독교 한국주의자 (Christian Koreanizer)가 되고 싶어요? 정체성이 어느 편에 있습니까?

예수님주의 열두 제자안에서 세리 마태가 있고 열심당 시몬도 있었습니다. 세리는 로마의 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로마가 억압을 주고 세금도 많이 내야 했습니다. 유대인인 세리가 로마를 위해 일하고 게다가 자기 것으로 일부를 훔칠 때가 일상이었습니다. 열심당이 유대 민족주의자이었습니다. 군사적인 수단으로 로마를 쓰러뜨려야 메시아가 오실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열심당이 배신자를 보면 칼로 죽일 때가 많았습니다.

어째서 시몬과 마태가 같이 살 수 있었어요? 예수님이 가운데 계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제자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삼아 자기를 버리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을 너무 사랑하고 예수님으로 마음이 가득하기 때문에 서러의 있는 차이가 너무 작게 보입니다.

이 것이 자기 특징을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적인 은사는 거듭난 사람이야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해서 빛나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한인 교회로 영적인 원리를 많이 배웠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음식 먹을 때 서러 나눠 주는 습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적으로 말하면 음식은 교재를 표시합니다. 성찬식에서 그리스도안에 서러가 하나가 뒨 신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한국 민족에 이미 있는 공동체의식이 거듭난 사람들 사이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4. 마지막날의 황상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마태24장7절)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개9장9-10절)

마지막날에 이 땅에서는 민족과 국가간에 싸움이 심해집니다. 반면에 모든 족속과 언어와 백성과 나라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천국에서 찬양을 드리는 일도 생깁니다. 나라사이에 있는 갈등이 인간 죄때문에 심하게 되는 반면에 그 흐름을 무시하고 대항하는 것처럼 다른 나라에 속한 사람들이 예수님이 흘리신 비로 하나가 되는, 널라운 성령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중동에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대부흥이 일어났는데 믿게 되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황상을 보고 완전한 회심을 했습니다.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였던 그리스도인이 이제 유대인인데 예수님을 믿게 된 형제와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미움이 사라지고 대신에 사랑이 넘친 것입니다. 정치가도 외교관도 학자들도 활동가도 하지 못했던 화목이 그리스도안에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종요한 것은 대화보다 더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가운데 자기를 넣고 나서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입니다.

저희가 하야 하는 일

밑에 있는 영상을 보세요. 그 젊은 인본 사람이 믿는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올바른 행동을 했습니다. 작년에 일본에서 텔레비 방송국앞에 한류를 반대하는 데모가 있었는데 한국에서도 그 뉴스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 때 용기를 내서 한 것입니다.

하물며 그리스도인들이 서러사이에 이런 시대라서 할 수 있는 교재와 연합이 많이 있는 것이 아니예요? 저는 올해 1월초에 있었던 동아시아 청녕회에 일부분 참석했습니다. 강의도 하나 했습니다. 중국, 한국, 그리고 일본인들이 서로 교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동아시아 기독청년대회
내년도 2월에 제주도에서 하겠습니다!

2012年マラナサ・バイブル・フェローシップ その2

その1からの続き)

二日目の晩の私のメッセージは、マタイ13章1-50節から「天の御国の奥義の喩え」という題名で話させていただきました。

リンク先: 原稿 ・ 音声

下界(??)に降りたら再びストレスのある生活に戻る。けれども、そこにおいて御言葉を聞き、心を開くところに天の御国が展開していく。そして、御言葉を受け入れた人々の中にもサタンの働きがある偽物がはびこるが、広い心をもって忍耐していかなければいけない。最後は、必ず清算の時が来る。隠れたことがすべて明らかにされるので、私たちの周りにある不条理について、真理的・霊的圧迫について、主が解決してくださるという信仰を持つことができる。そして、主がこの世界に清算の日をもたらす前に、宝のように大切にされている主が私たちを贖ってくださる、という内容でした。

ところで今回のキャンプは、雨がたくさん降りました。けれども、不思議に何か活動をする時には晴れて、すべてを行うことができました!二日目の昼は、いつものように一部の人たちは広場でスポーツです。ソフトボールとサッカーをしました。

そして何よりも三日目の午後に行なったバプテスマ式は豊かに祝福されました!三日目の午前中は富士山二合目の現地は雨降りでしたが、午後にバプテスマ式を予定していた富士川の上流に近づくにつれ晴れてきて、川も冷たかったですが、濁流にもなっておらず最高の状態でした。

三日目の朝の感謝会で、バプテスマを受ける予定の三人から救いの証しを聞きました。その中の一人は私たちLCFの教会にいらして約三ヶ月の姉妹で今年正月に救いを受けました。彼女に与えられた赤ちゃんがキャンプの中でも可愛いスターでしたが、その子にまつわる話で、赦せなかった人を赦す心が与えられた、という内容です。

そしてもう一人の方はハワイに留学していたけれどもそこで救われ、日本に戻ってきたら決してイエス様から離れたくなかったけれども、ご出身が静岡市で帰国後すぐに静岡城北教会に導かれ、そしてそこの牧師さんで私の友人でもある見城和人さんがカルバリーチャペル所沢を紹介し、そしてそこで、これまた私たちの友人の宣教師が、職場に近い恵比寿バイブル・スタディを紹介し、私たちとも知り合いになりました。お二人とも、主に救われた喜びでいっぱいです!

2012年マラナサ・バイブル・フェローシップ その1

毎夏恒例のマラナサ・バイブル・フェローシップのファミリー・キャンプが、8月13‐15日に富士山麓山の村で行なわれました。昨年と同じところです。(2011年の様子はこちらのブログ記事でどうぞ。)

「米田ひろしミニストリー」の紹介

今年は、伝道にもっと力を入れた集会でした。ゴスペル・シンガーの米田ひろしさんが一日目晩の集会を担当され、ロゴスの私が二日目のバイブル・タイムを担当致しました。米田さんとは初めての出会いでしたが、たくさんの共通項があり、一気にいろいろなことを分かち合い、親しく交わることができ、とても嬉しかったです。

ご自身の教会生活ルーツがワシントン州のカルバリー・フェローシップを始めとし、遣わされている教会が私もよく耳にしている南加州にある日系教会、そして共通の友人や知人が数人おり、おまけに私の大学時代のクリスチャン先輩がご自身の所属される教団の牧師だった、などありますが、霊的には、ご自身が引きこもりとそれに伴う鬱との闘いから救いを受けた、というところに大きな共感を得ました。私も救いのきっかけは、高校の後期から大学初期に悩んでいた抑うつでした。

彼が今年出したアルバム「あなたに逢えてよかった」の同題の歌は、まさに私が霊の救いを受けたことによって得られた癒しにおける神の真実ですが、このような歌詞になっています。

涙流してよかった。心痛んでよかった。
傷ついたけどよかった。傷つけるよりよかった。

風が強くてよかった。雨が冷たくてよかった。
険しい道でよかった。遥か遠くてよかった。

すべての営みは、定められた時がある。
今がどんなに苦しくても、あなたがくれる意味がある。

あなたに逢えてよかった。心開いてよかった。
勇気を出してよかった。今すべてがよかった。
・・・・

これは伝道者の書3章1節の「天の下では、何事にも定まった時期があり、すべての営みには時がある。」から来ている言葉ですが、ここに流れている真理は、神がいかなる物事や出来事にも主権を持っておられることです。この世界は、クリスチャンの世界でさえ、悪いことについては蓋をして、それがあたかも神の領域から離れているかのように話します。これは非聖書的な神学であり、主は、すべてのことを、たとえそれが悪であってもご自分の主権の中に入れておられ、それをすべてご自身の栄光にされます。この真理によって、私も深い魂の癒しを受けました。

米田ひろしミニストリー

上のウェブサイトに、米田さんの証しも、また「あなたに逢えてよかった」の試聴もできます。

今回もノアの石原さんご夫妻がいらっしゃいましたが、静岡の牧師さんたち自身もフォークのバンドも組んでおられるほどの面々ですから、賛美に豊かな集会となりました。いろいろな人に教会賛美について質問をしましたが、みなが同様に「技術ではなく個々のクリスチャンの霊的成熟」を条件に挙げておられました。

下に、一日目の様子の一部を紹介します。

その2に続く)

東松島復興支援旅行(8月7‐9日)

盆の時期を越えましたが、これからは残暑との戦いですね。みなさん体にお気をつけください。

8月のニュースは、もちろんLCFの礼拝場所が日暮里に移動したことがありますが、二つのイベントがありました。一つは東松島復興支援旅行で、もう一つは昨日帰ってきました、マラナサ・バイブル・フェローシップのファミリー・キャンプです。

東京日暮里国際教会の朴樹民宣教師が、神学校時代に親友となった、今は教会の副牧師をされている方が日本へ短期宣教チームとして来ました。朴宣教師ご自身は去年の12月に既に月浜に行かれていたので、そこに行くことになりました。

私たちは付き添い、というか、韓国語の通訳を初めとする奉仕とその他のお手伝いです。三月以降行っていなかった月浜ですから、とても久しぶりです。

韓国の兄弟姉妹と時間を共に過ごせたのは、とても楽しく、また休息となりました。旅行というと必ず「温泉」に入りたがる人々が多かったですが、例外にもれず、何と行きと帰りの二回入りました!そして韓国チームは、夕食会に出す料理だけでなく、自分たちで食べるものは基本的にすべて持ってきました。(宿泊先となったチャックさんと由美さんの家で、お二人は、朝からキムチの出る、そしてまたたく間に大人数の朝食を作り、また後片付けをする婦人たちの姿を、関心を持って見ていました!)その中で私たちも久しぶりに、韓国文化と生活に触れることができ、そしてその中にイエス様の愛がブレンドされていて、癒される思いでした。

東松島は大きく変わっていました。復興の早さに驚かされます。月浜には、以前紹介させていただいた海苔の産業復興グループの月光さんが活躍していました。私たちは、たいしたお手伝いはできませんでしたが、海苔の養育に使う綱を整えるお仕事をさせていただきました。この頃は、ボランティアに単純な作業を任せることができている反面、複雑な作業がしわよせになってしまっている、ということでした。

舟巡りもボランティア向けに始めてくださり、私たちも乗りました。私個人は、小学校の時にこの砂浜から舟巡りをしたことがあり、あまりにも美しかったので原体験のような追憶となりましたが、まさか三十数年後にこのような形で乗れるとは思ってもみませんでした。

一日目の晩は、公民館で日本宣教の講義を任されていたので、行ないました。私は、率直に一般に日本宣教で言われている言葉を否定しながら話していきました。例えば、「日本は宣教師の墓場だ」という言葉があるが、それはキリストの愛について何も知らない言葉である、など。一般の短期宣教とは異なる方法を話していきましたが、みなさん心を柔らかにして聞いてくださいました。

二日目の朝のデボーションの時間に、チャックさんが救いの証しと月浜に導かれた話をされました。午前中は、由美さんが毎週持っている「お茶っこかふぇ」で、ご婦人の一人が救いを証しを分かち合ってくださいました。DVDはイエス様の復活の話まで言っているそうです。

そして二日目の晩は、プルゴギ、チャプチェ、チヂミ、キムチを夕食に出し、談話室の外で、チームがテコンドー(韓国式空手)の踊り、日本語の歌を含めた唱歌、それから牧師さんによる証しの時間を持ちました。みなさん最後まで聞いてくださり、「自分が世界で最も悪い罪人」だということを悟れば、それが真の救いになるというしめくくりでした。

そして、もう一つ、会えるかどうか分からなかった牛網の千葉さんに、今回は会うことができたのもとても嬉しかったです。彼の実家の畑は津波の被害を受けたけれども、三日目にそこを立ち寄ったら、見違えるように実りある畑に変わっていました!彼からいろいろな話を聞くことができましたが、避難所の生活よりも今のほうがある意味で辛い、とのこと。仮設住宅という個別の生活、大勢の人が死んだけれども、醜い遺産相続の争いが多発、学校の吸収合併などなど、精神的な負担は今までになく重く圧し掛かっているそうです。けれども、マスコミには目に見えない姿はあまり取り上げられません。私たちのミニストリー(働きかけ)は、まだまだ続けなければいけないと強く思わされた次第です。

チャックさんと由美さんは、根気よく福音の種まきをしておられます。ぜひ芽が出て実が結ばれるまで、神が守り、それを成長させてくださるようにお祈りください!

教会案内のページ

ついに来週から日暮里駅前で礼拝を持つことになります。二つのページで教会案内をしています。

ロゴス・ミニストリーのサイト内
本ブログ内(右上にある「教会(LCF)の紹介」)
下に本ブログ内にある紹介の一部を紹介します。ぜひ上のページのいずれかを使ってご自身だけでなく、他の人々にも新しい礼拝場所をご紹介くださ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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ロゴス・クリスチャン・フェローシップ(Logos Christian Fellowship)は、2011年2月に開始し、新しい信仰者や信仰歴の若い人々に恵まれ、互いにキリストにあって愛するすばらしい共同体を神が生み出してくださいました。

2012年8月より、礼拝場所が日暮里駅前(JR・京成・舎人ライナー)に与えられました。
午前礼拝:日曜日午前11時より  場所:東京日暮里国際教会
午後礼拝:日曜日午後2時より 場所:DBC(ダイナミック・ビジネス・カレッジ

紫色の印が、東京国際日暮里教会内(午前礼拝の場所)
  荒川区西日暮里2-29-6 秋山ビル四階(一階にファミリーマート
赤色の印が、DBC(ダイナミック・ビジネス・カレッジ 午後礼拝の場所)
  荒川区西日暮里2-51-8 6階
(JR日暮里駅から:北口改札を出て右(東口)。エスカレーターで一階に下り直進。
 千代田線・西日暮里駅から:2番または3番出口から出る。)

興味のある方はぜひ、こちらへご連絡ください。 → info@logos-ministries.org

LCFの聖書メッセージは「LCF内のメッセージ」に掲載して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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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関連投稿記事:「【特報】 LCFが東京中心部へ移動!」「日暮里移動を控えて - 牧者の瞑想 その1」「その2」)

恵比寿バイブル・スタディのお知らせ(8月1日)

おはようございます。
昨日の日曜礼拝はみなさん、いかがでしたか?

今週の学びのお知らせです。

日時:8月1日(水)午後7時から
場所:目黒区立 田道住区センター三田分室 / 2階 第一会議室
聖書箇所:サムエル記第二4章以降
(その後の予定は、8月29日です。8月は東北復興支援旅行や修養会、イスラエル旅行準備会等で、三週間学びができないことをお許しください。)

先週の学びには、Iさんが出席され、また久しぶりにSさんがいらっしゃり、そして初めてKさんもいらっしゃいました!学び後の分かち合いも豊かに祝福され、改めて恵比寿バイブルスタディの継続の必要性を感じました。そして、学びには来たいけれども、仕事が入って来ることができない人々もいます。学びに来ることができるために、お祈りいただければ幸いです。

4章以降には、サウル家の支配がなくなり、ダビデによってイスラエルが統一されるところを読んでいきます。楽しみなのが、統一後のダビデの動きです。彼がすぐに行ないたかったのは、「神の箱をエルサレムに運ぶ」ことでした。礼拝王国を作ろうとしたのです。私たちの生活の中心が、自分の生活を支配される神礼拝に向かって突き進んでいるか?ということを学べると思います。

感謝。

LCFの活動予定(28日、29日)

みなさん、こんばんは。今日は本当に暑い一日ですね。お体に気をつけください。

明日と明後日の予定をお伝えします。

場所:足立区こども家庭支援センター 別館3階

28日(土)
13:00 祈り会
(聖書の学びは、祈り会の中でマタイ9章を読みます。)

29日(日)
11:00 午前礼拝: 士師記7章1-8節 「神に用いられる人々」
13:30 午後礼拝: 士師記6-8章

聖地旅行(2013年2月)のチラシ案内

2013年イスラエル旅行のチラシの内容をアップデートしました!申込は随時受け付けています。ぜひご連絡くださ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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ロゴス・ミニストリー企画の聖地旅行のご案内です。チラシをご覧ください。

聖書を体験するイスラエルの旅

2013年2月19日(火)-3月1日(金)(11日間)
旅行費用の目安: 32.8万円(燃油税5.5万円程度(2012年1月現在))
募集人数:25名(催行最小人員:15名)
申込連絡先:info@logos-ministries.org

また東京や近辺にお住まいで、ぜひ口頭で説明を聞きたいと願う方もご連絡ください。興味のある方が数人おられれば、時間が合えば伺わせていただきます。

そして、牧師や教会奉仕者で興味のある方に対しては、今回の旅行はロゴス・ミニストリー主催ですが、ぜひ協力して一つのグループとして動いていきたいと願っています。旅行する仲間の中で主にある良い交わりが生まれることを強く願っています。

日暮里移動を控えて - 牧者の瞑想 その2

その1からの続き)

イエス様という、多彩なお方

イエス様という方は、まるでたまねぎの皮のように、剥いても剥いても、また新しい側面を見出すことのでき、あらゆる働きの源である方であることに気づいています。ここ数年は、海外宣教の働きを始めたことによって新しく見えてきたイエス様がおられました。それは天から地に下るという、人々の生活の間に入られた方であることを知りました。言語はもちろんのこと、その人々の習慣や文化、社会制度に至るまで、罪ではない全てのものと一つになり、その中でキリストを自分のうちに見出してもらう、ということです。

けれども、イエス様は宣教者であられるだけでなく、大牧者でもあられます。なぜイエス様は、弱い人、苦しんでいる人、罪人の中におられたのか?そしてなぜ、あれほど、特にパリサイ派との確執があったのか、弟子たちの無知と無頓着にどうしてあれだけ忍耐されたのか、また何よりも、なぜあんなに父なる神に祈ることができたのか?これらの鍵は、「羊を世話する羊飼い」であります。「教えていることだけでなく、自分の命さえ捧げる」という愛にあります。これが牧者の思いです。

自分を変えるチャレンジ、ぎこちない愛

大きなチャレンジは、私自身です。先日、このブログでも紹介させていただいた、東松島の月浜地区の海苔産業の復興を目指す「月光グループ」の食事会が開かれました。月光の漁師さんにお会いできただけではなく、月浜を支援している他のボランティアの人々にも会えました。その一人の方が、こういう言葉を残しています。

彼らは自らを変えることと闘いながら、ここまで来た。
月浜の方々とは去年の四月以来のお付き合いをしてきました。そこは宮戸島という小島の端にあるため、自給自足精神の強い集落であり外部者に対して閉鎖的でした。津波が押し寄せ、数多くの人々が助けに来ることによって、「自分たちだけで生きていく」というところから、「他の人々との接点によって生きていく」という生活の転換を迫られました。けれども、後者の生活がいかに優れたものかを、喜びをもって体験していることを、月光の代表の方の満面の笑みから伺うことができました。

そして今、私自身も単なる聖書教師から牧師・教師への転換の喜びを味わっているのかもしれません。

そしてもう一つ、「愛」ということについてです。昨日、ある人の紹介によるビデオを観て感動しました。

なんと、これはタイ国の生命保険会社のCMなのですが、こんなに素朴な愛を短い時間で描いているのは珍しい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私がこれを見て思ったのは、このような愛を兄弟姉妹に持てるだろうか?というチャレンジもありますが、同時に、「こんな不器用な私でごめんなさい」という、口の利けない父と同じ思いがしています。

牧者という働きの中に身を置いて、不思議な体験をしました。これまでになかったことでした。それは、「神が与えられた人々を愛せる」という喜びでした。上からでなければ決して来なかった愛情です。だから、私自身が愛情深いとかそういうものでは決してなく、神がご自分の栄光のために、キリストを頭としている教会においては、愛を満ちあふれさせるようにしてくださるのだ、という実感です。

けれども、それをどう表現すればよいのかが自分に分かりません。下手くそだなって思います。とにかく御言葉を提供することに専念してきた生活を送ってきました。背後ではたくさん泣き、たくさん時間を使い、たくさん祈ってきたのですが、それをどう伝えればよいか分かりませんでした。不器用だなと思っています。でも、不器用だからといって落胆せず、愛がその欠点さえも乗り越えて押し流していくことを、切に祈りつつ奮闘していきたいと願っております。

今、教会に来られている方々は、私のことを愛し、支えてくださっていることを感謝します。またこれから教会に来てみたいと思われる方は、以上の通りですので今後とも何卒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

(参考文献:”Love: The More Excellent Way” by Chuck Smith)

日暮里移動を控えて - 牧者の瞑想 その1

あと一回を除いて足立区での礼拝は終わりです。次々回の8月一週目から日暮里駅前の東京国際日暮里教会内で礼拝を持ちます(午前礼拝のみ。午後礼拝はすぐ近くの日本語学校で行います)。(詳しい経緯はこちらの記事をお読みください。)

本格的に教会を始めたのは私個人の生活では初めてで、2011年初頭から始まったこの教会を通して大きな挑戦をイエス様から受けてきました。それは「牧者」とは何か?というチャレンジです。私は聖書教師としての働きを十五年ほど持ってきました。そして米国の教会からの宣教師として、日本国内また海外で働いてきました。

「こうして、キリストご自身が、ある人を使徒、ある人を預言者、ある人を伝道者、ある人を牧師また教師として、お立てになったのです。それは、聖徒たちを整えて奉仕の働きをさせ、キリストのからだを建て上げるためであり、・・・(エペソ4:11-12)」

ここの「牧師また教師」は、ギリシヤ語では「牧師=教師」となっています。ですから牧者の働きには教師としての働きが前面にあります。神の御言葉を教えることによって、聖徒たちを整えて奉仕の働きをさせます。これは大前提です。けれども牧会の中に教える働きがあるのであり、教えているからと言って自動的に牧会ではありません。その違いは何なのか?それを考えていました。

教師と牧者の違い

1)聖書教師は「教える」ことに注意するが、牧者はそれだけでなく「個々の魂」を注視する。

あなたがたの指導者たちの言うことを聞き、また服従しなさい。この人々は神に弁明する者であって、あなたがたのたましいのために見張りをしているのです。ですから、この人たちが喜んでそのことをし、嘆いてすることにならないようにしなさい。そうでないと、あなたがたの益にならないからです。(ヘブル13:17)」「魂を見張る」というと人を支配する監視のように聞こえますが、そうではなく「注視し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それはちょうど、公園で遊ぶ子供たちを見ている大人のようであり、プールサイドの監視員のようでもあり、危険がないかどうか見張っている、守りの働きであります。キリストの内にその人が留まっているかどうかをじっくりと見ていく働きです。

2)聖書教師は「教えている内容」によって信頼を得るが、牧者は「羊の生活全般」への関わりによって信頼を得る。

わたしは、良い牧者です。良い牧者は羊のためにいのちを捨てます。(ヨハネ10:11)」「このようにあなたがたを思う心から、ただ神の福音だけではなく、私たち自身のいのちまでも、喜んであなたがたに与えたいと思ったのです。なぜなら、あなたがたは私たちの愛する者となったからです。(1テサロニケ2:8)」イエス様のように、贖罪のための命の犠牲はしませんが、けれども自分の生活をかけて世話をするという面では、主のお姿を牧者は真似なければいけません。

教会を始めた時から、私は強く、教会とは「神の家族」であると思わされています。家族というのは、生活臭がするところです。御言葉を体系的に学ぶことは非常に大切ですが、教会は学校ではなく「家」の中そのものです。人格と人格がぶつかるところです。御言葉が、ノートに書き残していく文字ではなく、「自分」というものを退けて、打ち捨てていくことによって従順になる生きた言葉になります。大変なところも共有し、喜ばしいことも共有し、みなで成長し、その結果キリストをほめたたえるところです。

私は、妻はいますが子供がいません。ゆえに、次の御言葉の挑戦を受けています。「自分の家庭をよく治め、十分な威厳をもって子どもを従わせている人です。・・自分自身の家庭を治めることを知らない人が、どうして神の教会の世話をする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1テモテ3:4-5)」父親のような威厳とはどこから出てくるのか、これから模索していくことになるのでしょう。

3)聖書教師や説教者は「主への情熱」が試される。牧者は「主への情熱」に加えて、「人への同情」が試される。

また、群衆を見て、羊飼いのない羊のように弱り果てて倒れている彼らをかわいそうに思われた。(マタイ9:36)」ここの「かわいそう」という言葉は、まさに中国から来たことわざ「断腸の思い」に似ているものが使われているそうです。まさに肝が裂かれるような思いです。人が弱っている時に、決して傍観視できない心です。祈りをもって父なる神の前に出て執り成し、また聖霊の助けを得てその人に関わっていく労力です。

4)宣教師の楽しみは、御霊の流れに乗ることである。それはあたかも、サーフィンの波乗りをしているようだ。牧者の楽しみは、「神が育ててくださる植物」を見る喜びだ。

宣教師が楽で、牧者が大変だということでは決してありません。サーファーに聞けば誰でも、波に乗ることがどれだけ大変であるかを教えてくれるでしょう。御霊の流れを知ることは、濁流のような波の流れになおかつ板に乗っていくことのできる、霊的筋力が試されます。

けれども牧者は、園芸を楽しむような喜びがあります。時間をかけて楽しむ喜びです。神が成長させてくださいます。時に台風が来て、茎が折られ、根が切れてしまうかもしれません。けれども、根気良く水を与え、肥料を与え、どうやったら枯れないようにすればよいか工夫し、実が結ばれるまで見届けるのです。

その2に続く)